<칼럼니스트 안철수>
사회는 소통으로 유지된다. 사람들은 언어를 통해 생각을 나누고 감정을 확인하며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한다. 그래서 언어는 단순한 정보 전달 수단이 아니라 공동체를 묶어주는 사회적 기반이다.
신조어와 밈, 우리는 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가
사회 구성의 근간은 소통이다. 사람은 언어를 통해 생각을 나누고 감정을 확인하며 서로의 행동을 조정한다. 언어는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을 넘어 타인을 이해하게 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묶어주는 사회적 접착제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언어가 이상하게 쪼개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신조어가 등장하고, 인터넷과 SNS에서는 짧은 문장 하나와 이미지 하나가 거대한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른바 밈(Meme)이다. 누군가에게는 웃음이고 놀이이며 소속감을 확인하는 언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해석할 수 없는 암호에 가깝다.
과거에도 세대마다 사용하는 언어는 달랐다. 그러나 과거의 언어 변화에는 시간이 있었다. 새로운 표현이 생기면 사회에 퍼지고, 반복해서 사용되면서 어느 정도의 공통된 의미를 획득했다.
지금은 다르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언어가 만들어지는 순간 소비되고, 소비되는 순간 다시 변형된다. 하나의 신조어가 대중에게 알려지기도 전에 새로운 표현이 등장한다. 밈은 더욱 빠르다. 오늘의 유행어가 내일이면 낡은 표현이 되고, 어제의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면 대화의 맥락 자체를 놓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조어나 밈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언어는 원래 변한다.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문화 현상이다. 문제는 언어의 변화 속도가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속도를 넘어설 때 발생한다.
특정 집단 안에서만 통하는 언어는 강력한 결속력을 만든다. 같은 밈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서로를 ‘우리 편’이라고 느낀다. 반대로 그 밈을 모르는 사람은 순식간에 ‘남’이 된다.
언어가 공동체를 연결하는 접착제에서 공동체를 구분하는 경계선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 현상은 세대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특정 조직의 은어를 모르면 대화에 참여하기 어렵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그 집단의 밈을 이해하지 못하면 의견을 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진다. 정치적 진영에서도 자신들만의 언어가 만들어진다. 같은 사건을 놓고도 서로 다른 단어와 프레임을 사용한다.
결국 같은 현실을 보고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상대방이 사용하는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신조어를 두고 ‘언어 파괴’라고 말한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면 ‘꼰대’라고 규정한다. 한쪽은 무례하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고집스럽다고 한다.
언어의 차이가 상대방에 대한 판단으로 바뀌는 순간 갈등은 시작된다.
더구나 밈은 갈등을 빠르게 증폭시키는 특성이 있다. 밈은 복잡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짧고 강렬하며 감정을 자극한다. 그래서 논리보다 빠르게 퍼지고, 사실보다 강하게 기억된다.
한 사람을 비판하는 밈이 만들어지면 그 사람의 설명을 듣기도 전에 이미 평가가 끝날 수 있다. 어떤 집단을 조롱하는 표현이 반복되면 그 집단에 대한 편견이 하나의 유머처럼 소비되기도 한다.
웃음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안에 혐오와 배제가 들어갈 수 있는 이유다. 이렇게 되면 사회적 갈등의 양상도 달라진다.
과거의 갈등은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하는 형태였다. 지금의 갈등은 그보다 한 단계 더 깊어지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반박하기 전에 서로의 언어부터 이해하지 못한다.
상대방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면 그 사람의 의도를 추측하게 된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만큼 쉽게 단정한다. 단정은 불신을 만들고, 불신은 적대감을 키운다.
결국 사회적 갈등은 ‘무엇이 옳은가’를 놓고 싸우는 데서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생각하는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단계로 이동할 수 있다.
이것은 민주사회에 매우 위험한 신호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의견을 달리하면서도 일정한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상대방의 말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각자가 서로 다른 언어 체계와 밈의 세계에 갇히게 되면 공론장은 사라진다.
공론장이 사라진 자리에는 ‘우리와 그들’만 남는다. 따라서 앞으로의 소통에서 필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같은 신조어를 사용하도록 만드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 차이를 넘어 대화할 수 있는 공통의 기반을 만드는 일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자신의 언어가 누군가에게는 배제의 장벽이 될 수 있다는 감각이 필요하다. 기성세대 역시 낯선 언어를 무조건 틀린 것으로 규정하기보다 그 언어가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탄생했는지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특히 학교와 직장, 공공기관과 미디어에서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를 유지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언어와 공동체가 함께 사용하는 공적 언어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갈등은 어쩌면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느냐’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언어가 달라도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표현이 달라도 의미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웃음이더라도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소통의 위기는 언어의 위기가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의지가 사라지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하나의 언어가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끝내 대화할 수 있는 사회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