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유사』에는 당나라에서 모란꽃 그림과 꽃씨가 신라로 전해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림 속 꽃에는 나비가 보이지 않았다. 그림을 살펴본 신라 선덕여왕은 꽃에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꽃에서는 향기가 나지 않았다고 전한다. 그림에 나비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향기까지 알아맞혔다는 이 이야기는 신라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다.
이 이야기는 일연의 『삼국유사』 권1 기이편에 수록된 ‘선덕왕 지기삼사(善德王知幾三事)’ 가운데 하나다. 당 태종이 보낸 그림에 여왕의 배필이 없음을 빗댄 뜻이 담겨 있었다는 해석도 전한다. 다만 설화에 담긴 상징과 역사적 사실을 구분해 읽을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이야기는 개구리 울음소리다. 겨울날 영묘사 연못인 옥문지에서 개구리들이 시끄럽게 울자 선덕여왕은 서쪽 여근곡에 백제군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군사를 보내 확인하니 실제로 적군이 매복해 있었다는 내용이다.
여왕이 자연의 이상 징후를 군사적 상황과 연결해 판단했다는 이야기다. 모란꽃과 백제군 매복에 관한 일화는 『삼국사기』에도 일부 기록되어 있어 『삼국유사』에만 등장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세 번째는 자신의 죽음과 장지를 예견했다는 이야기다. 선덕여왕은 자신이 죽으면 낭산 남쪽에 묻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여왕이 세상을 떠난 뒤 그곳에 능이 조성됐다. 『삼국유사』는 이 장지와 도리천을 연결해 설명한다.
능 아래에 사천왕사가 세워졌는데, 불교 세계관에서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는 점을 들어 여왕의 예언이 실현됐다는 것이다. 이는 낭산 자체를 곧바로 도리천이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후대의 불교적 해석을 통해 의미를 부여한 이야기다.
선덕여왕은 632년 왕위에 올라 647년까지 신라를 다스렸다. 재위 마지막 해에는 정치적 갈등이 반란으로 번졌다. 상대등 비담과 염종 등이 여왕의 통치에 반발해 군사를 일으킨 것이다. 이를 비담의 난이라고 한다.
반란 당시 큰 별이 월성에 떨어졌다는 기록이 전한다. 비담은 이를 왕군이 패할 징조라고 선전했다. 이에 김유신은 불붙인 허수아비를 연에 매달아 하늘로 띄웠다. 마치 떨어진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게 한 뒤, 별이 되돌아갔다는 소문을 퍼뜨려 왕군의 사기를 북돋웠다고 한다.
이 일화는 『삼국사기』 권41 김유신 열전에 기록되어 있다. 다만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과 사건의 세부 내용이 실제로 기록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선덕여왕은 반란이 진행되던 중 사망했다. 비담의 난은 이후 진덕여왕대에 김유신을 중심으로 한 왕군이 진압했다. 이 사건은 여왕의 통치에 대한 반발뿐 아니라 신라 왕실 내부의 권력 다툼과 정치적 갈등을 보여준다.
선덕여왕을 둘러싼 세 가지 예언은 『삼국유사』가 전하는 설화다. 이를 모두 역사적 사실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당시 사람들이 여왕의 지혜와 통치 능력을 어떻게 기억하고 전승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자료다. 반면 비담의 난과 김유신의 연 이야기는 『삼국사기』에도 기록되어 있어 설화와 사료를 함께 비교할 필요가 있다.
오늘부터 매일 한 편씩 총 80회에 걸쳐 한국사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와 그 역사적 배경을 차분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 | K-한식디렉터 장윤정
다음 회 예고 | 김유신과 김춘추, 삼국통일의 동맹
참고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유사 권1 선덕왕 지기삼사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사기 권41 김유신 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선덕왕지기삼사 설화


